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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노트/에세이 :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 본문
작년 연말을 시작으로 주 3회 달리기를 시작하고부터 달리기와 관련한 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달리기, 러닝과 관련한 책이 여럿 눈에 띄었는데, 그중에서도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을 먼저 읽게 된 계기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러닝에 대한 소통을 하던 인친님의 추천을 통해서였다.
당시 달리기를 시작한지 8개월 되었을 무렵이었는데, 어느 정도 30분, 5km 달리기가 익숙해지고 나니, 페이스(속도)에 대한 욕심이 생기게 되었고, 욕심이 생길수록 달리기가 조금은 버겁게 느껴졌다. 그때 마침 읽게 된 이 책,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나에게 근시안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편안하고 달리기를 대하는 태도의 변화를 주었다. 그래서 요즘 나는 달리기에 진심인편이다.
본문에서 인상 깊었던 내용을 발췌해 적어본다.
계속하는 것 - 리듬을 단절하지 않는 것. 장기적인 작업을 하는 데에는 그것이 중요하다. 일단 리듬이 설정되어지기만 하면, 그 뒤는 어떻게든 풀려 나간다. 그러나 탄력을 받은 바퀴가 일정한 속도로 확실하게 돌아가기 시작할 때까지는 계속 가속하는 힘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아무리 주의를 기울인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p.19
강물을 생각하려 한다. 구름을 생각하려 한다. 그러나 본질적인 면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생각하고 있지 않다. 나는 소박하고 아담한 공백 속을, 정겨운 침묵 속을 그저 계속 달려가고 있다. 그 누가 뭐라고 해도, 그것은 여간 멋진 일이 아니다. p.45
런린이인 나는 늘 궁금했다. 사람들은 어떠한 생각을 하면서 달리고 있는 것일까. 생각이 많을 때 달리기를 하면 좋다고 하는데, 달리면 생각이 정리가 되는 것일까? 그런 궁금증... 그런데 내가 잘못 생각했다는 것을 느꼈다. 달리는 동안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좋은 것일지도 모른다. 온전한 나의 내면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에 좋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생각을 정리해야 한다는 부담을 걷어내고 나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실패의 원인은 명확했다. 달리기 양의 부족, 달리기 양의 부족, 달리기 양의 부족. 그것이 전부였다. 연습량의 절대 부족에다, 체중도 줄이지 못했다. 42킬로 정도는 적당히 연습하면 어떻게든 달릴 수 있겠지, 하는 오만한 생각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생겼던 것이다. 건전한 자신감과 불건전한 교만을 가르는 벽은 아주 얇다. 젊었을 때라면 확실히 '적당히 해도' 어떻게든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자신을 혹사시키는 연습을 하지 않아도 이제까지 쌓아왔던 체력의 축적만으로도 무난한 기록을 올릴 수 있었을 것 같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나는 더 이상 젊지 않다. 지불해야 할 대가를 치르지 않으면 그에 상응하는 것밖에는 손에 넣을 수 없는 나이에 접어들고 있는 것이다. p.87
그러므로 그녀들에게 뒤에서부터 추월을 당해도 별로 분하다는 기분이 들지 않는다. 그녀들에게는 그녀들에게 어울리는 페이스가 있고 시간성이 있다. 나에게는 나에게 적합한 페이스가 있고 시간성이 있다. 그것들은 전혀 다른 성질의 것이며, 차이가 나는 건 당연한 것이다. p.146
나는 나에게 맞는 페이스와 시간성이 있다. 그렇다.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회사에서, 학교에서, SNS에서)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한다. 달려보면 알게 된다. 달리기는 타인과 비교하는 것이 불가능한 운동이다. 오롯이 어제의 나 자신과 비교할 수 있다. 그만큼 솔직한 것이 달리기일 것이다. 그것을 인정하고 나니 페이스에 대한 욕심도 조금은 줄어들었다. 그저 어제의 나보다 조금씩 나아지면 된다. 페이스 디톡스라고 표현하던데.. 나는 페이스 디톡스로 달리기가 더 재밌어졌다.
그러므로 소설가에게 있어서 유일한 올바른 방법 같은 것은 어디에도 없다.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나 자신에 관해서 말해달라고 한다면 '기초 체력'의 강화는, 좀 더 큰 규모의 창조를 위해서는 없어서는 안 될 일의 하나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그것은 해볼 만큼의 가치가 있는 일이다.(적어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하는 쪽이 훨씬 좋다),라고 믿고 있다. 그리고 무척 평범한 견해이긴 하지만, 흔히 말하듯, 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일에는 열심히 하는 만큼의(어떤 경우에는 지나치리만큼의)가치가 있다. p.150
'나는 인간이 아니다. 하나의 순수한 기계다. 기계니까 아무것도 느낄 필요가 없다. 오로지 앞으로 나아갈 뿐이다.' 이 말을 머릿속에서 만트라처럼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되풀이 했다. 글자 그대로 '기계적'으로 반복한다. p.170
너무 힘이들때는 (타인이 아닌) 나 자신을 도우라고 했다. 달리다가 힘이 들면 나에게 세뇌를 하게 된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이것은 꼭 만트라 같다는 생각을 했는데, 풀코스, 트라이애슬론, 100km 울트라마라톤을 달린 무라카미 하루키와 비교도 안 되는 힘듦이겠지만, 그런 하루키도 만트라를 한다는 것이 좋았다. 힘들 때는 감정이 없는 기계처럼 그 일을 묵묵히 해보는 것도 살아가는 지혜가 되지 않을까... 성취하고 나면 그때는 만끽해도 될 테니 말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일 가슴 찡했던 장면이다.
우리는 초가을 일요일의 소박한 레이스를 끝내고 각자의 집으로,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다. 그리고 다음 레이스에 대비해 각자의 장소에서 (아마) 이제까지와 같이 묵묵히 연습을 계속해간다. 그런 인생을 옆에서 바라보면 - 혹은 훨씬 높은 데서 내려다보면 - 별다른 의미도 없는 더없이 무익한 것으로서, 또는 매우 효율이 좋지 않은 것으로서 비쳐진다고 해도, 또한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닌가 하고 나는 생각한다. 가령 그것이 실제로 바닥에 작은 구멍이 뚫린 낡은 냄비에 물을 붓는 것과 같은 허망한 일에 지나지 않는다고 해도, 적어도 노력했다는 사실은 남는다.
효능이 있든 없든, 멋이 있든 없든, 결국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것은 대부분의 경우, 눈에는 보이지 않는(그러나 마음으로는 느낄 수 있는) 어떤 것임이 분명하다. 그리고 진정으로 가치가 있는 것은 때때로 효율이 나쁜 행위를 통해서만이 획득할 수 있는 것이다. 비록 공허한 행위가 있었다고 해도, 그것은 결코 어리석은 행위는 아닐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실감으로써, 그리고 경험칙으로써. p.255
마음을 따라 간다는 것이 좀처럼 불안하고 두려울 때가 있다.
특히나 요즘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산다는 것'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누군가는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하기 싫은 일을 감당하며 살아가는데, 생각해보면 나는 그렇게 살아보지 못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에 강한 재미를 느꼈고, 하고 싶은 것을 통해 돈을 벌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아직도 하고 싶은 일과 책임감이라는 것 사이에서 방황하는 중이다. 그럼에도 하루키의 말이. 위로가 되었다.
책은 너무나 쉽게 빠르게 읽혔다. 그런데 마지막 1-20페이지를 남겨두고 읽기를 멈추었다. 나도 참 이상한 버릇이다. 책이 끝나는 것이 아쉬웠기 때문이다. 한 템포 쉬고, 책을 정리하며 나의 러닝, 달리기 인생도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처럼 장거리 레이스였으면 바랬다. 러너스 하이와 러너스 블루를 경험하고, 젊음이 지고 나이 들어감에 순응하지만 끝까지 나의 페이스를 멈추지는 않는. 꾸준히 반복해가는. 그렇게 아래의 말처럼 내 나름의 납득할 만한 어떠한 장소에 도달하는 것. 가령 근접하는 것.
나는 또 한 살을 먹고 아마도 또 하나의 소설을 써가게 될 것이다. 어쨌든 눈앞에 있는 과제를 붙잡고 힘을 다해서 그 일들을 하나하나 이루어 나간다. 한 발 한 발 보폭에 의식을 집중한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동시에 되도록 긴 범위로 만사를 생각하고, 되도록 멀리 풍경을 보자고 마음에 새겨둔다. 누가 뭐라고 해도 나는 장거리 러너인 것이다.
개개인의 기록도, 순위도, 겉모습도, 다른 사람이 어떻게 평가하는가도, 모두가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나와 같은 러너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하나의 결승점을 내 다리로 확실하게 완주해가는 것이다. 혼신의 힘을 다했다, 참을 수 있는 한 참았다고 나 나름대로 납득하는 것에 있다. 거기에 있는 실패나 기쁨에서, 구체적인 - 어떠한 사소한 것이라도 좋으니, 되도록 구체적으로 -교훈을 배워 나가는 것에 있다. 그리고 시간과 세월을 들여, 그와 같은 레이스를 하나씩 하나씩 쌓아가서 최종적으로 자신 나름으로 충분히 납득하는 그 어딘가의 장소에 도달하는 것이다. 혹은 가령 조금이라도 그것들과 비슷한 장소에 근접하는 것이다(그렇다, 아마도 이쪽이 좀 더 적절한 표현일 것이다). p.257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도, 달리기에 진심인 사람도, 인생을 살아가며 힘든 사람에게도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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